🎼 공연 리뷰 | 《The Rising World: 물의 정령》
📅 2025년 5월 29일(목) 19:30
📍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 러닝타임: 140분 (인터미션 20분 포함)
👶 관람 연령: 초등학생 이상
🌊 K-오페라의 시작, 세계를 향한 첫 물결
《The Rising World: 물의 정령》은 예술의전당이 직접 기획·제작한 창작 K-오페라의 초연작이다.
동양 고대사와 철학, 그리고 현대 사회의 위기 담론을 음악극 형식으로 엮어낸 본 작품은 세계 무대를 겨냥한 한국 오페라의 새 물줄기다.
이 오페라는 단순한 물의 이야기가 아니다.
‘정령’이라는 존재는 곧 우리가 외면해 온 감정의 흐름, 무너진 윤리, 잊힌 자연의 리듬 그 자체다.
마치 고대 중국의 우왕(禹王)이 홍수를 다스린 후 하늘의 뜻(天命)을 묻고, ‘홍범구주’라는 아홉 가지 다스림의 원리를 받은 것처럼,
이 작품은 인간과 세계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한 정신적 나침반을 제시한다.
💧 물, 도(道), 그리고 흐름의 철학
'물'은 인간에게 가장 친숙한 동시에 가장 다루기 어려운 존재다.
고대 동양 사상에서 물(水)은 생명의 원천인 동시에 무질서와 혼돈이 잠재된 에너지로 여겨졌다.
《물의 정령》에서 '정령'은 전통적 의미의 '물귀신'이 아니다.
그는 인간이 조절하지 못한 감정의 잉여, 통제 불가능한 시간의 왜곡,
그리고 우리가 끊임없이 억누르고 외면해온 도(道)의 붕괴를 은유한다.
장인이 제작하는 ‘물시계’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그는 ‘시간’을 가두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기술로 구현하지만,
그 시계는 오히려 자연의 흐름을 잃고, 도의 리듬을 왜곡한 인위의 상징이다.
거문고가 등장하는 장면은 이러한 감정적 균열을 소리로 깨운다.
거문고의 현은 정령의 호흡, 공주의 내면, 우주의 파동을 타고 흐르며,
단순한 악기를 넘어 동양의 심성과 진동하는 자연의 대화체로 기능한다.
🛠️ 줄거리 요약 | 흐름이 멈춘 세계, 그리고 회복의 여정
왕국에 이상현상이 이어진다.
공주는 설명할 수 없는 병에 걸리고, 날씨는 흐름을 잃었다.
이 혼란의 실체는 바로 물의 정령, 즉 억눌린 감정과 외면된 질서의 현신이다.
장인은 물의 흐름을 기록하고자 물시계를 만든다.
그가 찾으려는 것은 진짜 ‘시간’이 아니라 회복된 윤리, 다시 흐르게 할 마음의 물길이다.
그의 제자와 함께 떠나는 여정은 결국 우리가 잃은 오상(五常) —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을 회복하는 과정이자,
홍범구주에서 말하는 천도와 인도의 조화를 향한 현대적 탐구다.
🎼 음악과 무대 | 오행의 사운드, 물의 미학
작곡가 메리 핀스터러는 동양의 거문고, 현대 전자음악, 오케스트라를 교차시켜
마치 오행(五行)의 순환처럼 음악을 흘려보낸다.
무대는 정지된 듯 흐르고,
음향은 예측할 수 없는 감정의 수위를 따라 흔들린다.
거문고의 떨림은 물의 결, 인간의 숨결, 그리고 정령의 파장을 동시에 그려낸다.
특히 개막 장면에서 Starry Beach 영상이 투사될 때,
관객은 마치 바다와 별, 인간과 하늘이 하나로 이어지는 음양의 조화로운 연결을 경험하게 된다.
🧭 캐릭터 해석 | 홍범구주로 본 상징 체계
공주 | 황수미 | 정령에 잠식된 존재 | 수(水): 감정과 혼돈, 내면의 무너짐 |
장인 | 김정미 | 물시계 제작자, 구도자 | 토(土): 기술과 중심의 회복 |
제자 | 로빈 트리출러 | 장인의 후계자 | 목(木): 미래 세대, 성장과 생명 |
왕 | 애슐리 리치 | 권위의 상징, 몰락의 아버지 | 금(金): 단절된 질서와 강제된 규범 |
정령 | 정민호 | 무질서와 진실의 화신 | 화(火): 파괴와 통과, 정화의 힘 |
기록자 | 김이삭 | 관찰자, 서사적 중심 | 신(信): 말과 진실의 윤리 |
제상 | 김동호 | 정치적 질서의 조율자 | 지(智): 현실과 판단의 논리 |
교사 | 박혜연 | 공주의 과거를 아는 자 | 인(仁): 돌봄과 관찰의 덕성 |
의사 | 김재일 | 분석자, 실패한 이성 | 의(義): 정의의 이면과 과학의 한계 |
💭 총평 | 물은 도다, 그리고 우리가 잃은 윤리다
《물의 정령》은 한국이 세계를 향해 선보이는 첫 K-오페라다.
그러나 그보다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믿는 질서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당신이 따르는 시간은, 무엇을 흐르게 하는가?”
우왕이 홍수를 다스린 후 받은 아홉 가지 지침 – 홍범구주는
단지 통치의 원리가 아니라, 삶의 균형과 윤리의 지도였다.
《물의 정령》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다시 그 물줄기를 묻는다.
우리는 흐름을 잃었다.
그 흐름을 다시 잇기 위해 필요한 것은
기술도, 지식도 아닌 —
**인간 내면의 복원된 도(道)**이다. 그 시작점이 한국이다.
📌 공연 정보 요약
- 기획/제작: 예술의전당
- 작곡: 메리 핀스터러
- 지휘: 스티븐 오즈굿
- 연출: 스티븐 커르
- 연주: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 합창: 노이 오페라 코러스
- 후원: 예술의전당 후원회, 아르떼뮤지엄, 두원이에프씨, 세아이운형문화재단, 아시아나항공, 몽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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