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을 대청 마루 밑으로 밀어 넣지 마”
📍 2025. 5. 30. (금) 19:30 | 영등포아트홀 대극장
5월의 끝, 할머니라는 이름의 이야기
5월, 가정의 달.
그 마지막 날에 나는 한 여인의 생을 마주했다.
연극 《작은 할머니》는 우리 모두에게 있었던 ‘어느 한 분’을 불러낸다.
소리 없이 삶을 견디고, 누구보다 강하게 한 시대를 살아낸 이름.
그녀는 ‘존재 그 자체’로 모든 걸 말했다.
“마음을, 대청 마루 밑에 밀어 넣지마…”
연극의 마지막,
작은 할머니는 손녀에게 말한다.
“마음을 대청 마루 밑으로 밀어 넣지 마.”
그 말이 마음속에 오래 맴돌았다.
참는 것이 미덕이던 시대,
드러내면 상처 입는 줄 알았고,
때론 상처 주는 말로 먼저 자신을 지키기도 했다.
그렇게 마음을 마루 밑으로 밀어 넣은 채,
우린 살아왔다.
하지만 그곳엔 따뜻함도, 빛도 없었다.
작은 할머니는 안다.
숨긴다고 아프지 않은 게 아니고,
말하지 않는다고 덜 다친 것도 아니라는 걸.
그래서 그녀는 말한다.
“마음을 꼭꼭 숨기지도 말고,
상대의 마음까지 밀어내지는 말라”고.
그 말은 손녀를 향한 당부이자,
관객 모두에게 건네는 조용한 부탁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주지 않기를,
서로의 마음에 마루 대신 따뜻한 햇살이 닿기를.
이제는,
드러내고, 살아내고,
함께 안아주는 시간으로 나아가자고.
🍂 이야기 속의 작은할머니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 말기, 남편 없이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작은댁’이라는 여인의 생애를 따라간다.
독립운동에 나선 남편은 소식이 없고,
홀로 시부모와 아이를 돌보던 그녀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김씨 집안의 ‘씨받이’가 된다.
그녀는 아이만 낳으면
다시 옛 시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약속을 믿었지만,
현실은 그녀의 마음처럼 순하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아이를 낳고도
자기 자리를 되찾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러나 그 안에서 잃지 않았던 것,
그녀 자신이었다.
🎭 배우들의 숨결
- 권경하 배우는 작은할머니 ‘작은댁’을 담백하고도 절절하게 표현했다.
말없이 눈빛으로, 어깨의 굽음으로, 침묵으로 인생을 그려낸다. - 정종준 배우의 할아버지 역할은 극에 묵직한 중심을 놓는다.
권위의 시대 속 따뜻한 균열 같은 인물이 인상 깊다. - 조연진인 한록수, 박형준, 구재숙, 홍성숙, 김성은, 서혜주, 김호준 또한
극 전체를 현실감 있게 떠받치며
‘그 시절’이라는 공간을 완성해냈다.
🎨 무대와 연출
무대는 마치 수묵화 속 장면처럼 담백했다.
광목천과 대청마루, 단출한 식탁과 항아리 하나.
그 모든 소품은 할머니의 기억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잔잔한 조명과
정대경 음악감독의 전통음악 위주의 사운드는
관객의 정서를 깊이 있게 끌어올렸다.
슬픔이 아니라, 삶을 통과한 자의 단단함이 느껴졌다.
💭 여운이 남는 연극
이 연극은 묻는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감정을 대청 마루 밑에 숨기고 살아왔는가?”
작은 할머니는,
그 숨겨둔 마음을 들춰내
그것도 삶이었다고 말해준다.
그것은 결코 약한 존재가 아니었으며,
가족을 위해, 아이를 위해,
자신을 지워가며 살아낸
이름 없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다.
🎟️ 공연 정보
- 작품명: 작은 할머니
- 기간: 2025. 5. 30. (금) ~ 5. 31. (토)
- 장소: 영등포아트홀 대극장
- 극단: 극단 목련
- 출연: 권경하, 정종준, 한록수, 박형준, 구재숙 외
- 연출: 강영걸 | 예술감독: 권경하
- 주최: 영등포문화재단, 영등포문화원
✍️ 한 줄 정리
작은할머니는 ‘살아낸 여성’ 그 자체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녀의 이야기를 보며
자신의 마음도 더는 숨기지 않기로 다짐했다.
이 무대는 끝났지만,
그 대사는 오늘도 내 마음 어귀에서 울린다.
“마음을 대청 마루 밑으로 밀어 넣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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