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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밤 [북리뷰] – 어둠을 건너는 발걸음, 우리 시대의 정신
하얀 코뿔소 노든과 어린 펭

도서 정보 — 『긴긴밤』 (루리 지음)

  • 제목: 긴긴밤
  • 글·그림: 루리
  • 출판사: 문학동네
  • 출간일: 2021년 2월 3일

루리 작가의 『긴긴밤』은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동물들이 주인공인 동화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그것이 단순히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가 아님을 곧 알게 됩니다. 이 작품은 상실과 고독, 그리고 그 너머의 연대와 희망을 이야기하며, 지금을 살아가는 모든 세대에게 깊은 울림을 전합니다.


길 위에 선 노든

노든은 코끼리 무리 속에서 자란 코뿔소입니다. 자신이 다른 종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 그는 따뜻한 보살핌 속에서 안정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오래 품어주지 않았습니다. 가족을 잃고, 친구마저 떠나보내고, 몸의 일부였던 뿔까지 잘려나가면서 노든은 잔혹한 현실 한가운데 서게 됩니다.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할지, 왜 살아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었죠.


작은 알 하나가 준 이유

그러던 어느 날, 노든은 버려진 펭귄의 알을 발견합니다. 처음에는 그저 지켜줘야 한다는 단순한 책임감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알은 노든의 마음속에 작지만 뜨거운 불씨를 지폈습니다. 그 알에서 깨어난 작은 펭귄, 펭귄은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였지만, 노든에게는 다시 걷게 하는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바다를 향한 여정

펭귄는 바다를 본 적이 없습니다. 노든은 그 아이를 데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갑니다. 뜨거운 햇볕과 차가운 밤공기, 배고픔과 두려움을 함께 견디며 나아갑니다. 이 여정 속에서 두 존재는 서로의 지지대가 됩니다. 긴긴밤은 여전히 길지만, 더 이상 혼자가 아니기에 발걸음은 멈추지 않습니다.


작품이 전하는 울림

이 이야기를 읽고 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연대입니다. 종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달라도, 서로를 받아들이고 지켜주는 관계는 존재 그 자체를 지켜내는 힘이 됩니다.
삶에는 누구에게나 끝이 보이지 않는 밤이 찾아옵니다. 그 밤을 통과하게 하는 것은 거창한 목표나 이상이 아니라, 옆에서 함께 걸어주는 한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긴긴밤』은 그 사실을 잔잔하면서도 확실하게 알려줍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정신

『긴긴밤』이 전하는 메시지는 현재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과 겹쳐집니다. 팬데믹, 기후 위기, 전쟁, 갈등, 그리고 관계의 단절까지… 우리는 각자의 긴긴밤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필요한 건 화려한 구호가 아니라, 서로의 밤을 함께 건너줄 마음입니다.

노든이 펭귄을 품었듯,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온기를 내어주는 것.
펭귄이 노든과 나란히 걸었듯, 작고 연약해도 끝까지 발걸음을 맞춰주는 것.

이 책이 담고 있는 연대·공존·책임이라는 가치는 오늘 우리가 잃어버려선 안 되는 사회의 기둥입니다. 홀로 살아남는 것보다 함께 살아내는 것, 그것이 『긴긴밤』이 던지는 가장 깊은 메시지이자, 이 시대가 붙잡아야 할 진짜 시대정신입니다.


마무리

『긴긴밤』은 어둡고 긴 시간을 견뎌내는 이야기이지만, 책장을 덮고 나면 마음속에 남는 건 절망이 아니라 온기입니다. 서로의 밤을 지켜주는 마음이야말로, 세상을 조금 더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힘임을 이 책은 보여줍니다.

긴긴밤은 언젠가 끝이 납니다. 그러나 그 길을 함께 걸었던 발자국은 오래도록 남습니다. 그리고 그 발자국 속엔, 우리가 함께 살아내야 할 내일의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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