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도량에서 묻고 깨닫는 길 :: 포포포님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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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없는 법문 속을 걷다 — 해인사 도량에서 묻고 깨닫는 길

포대, 마음 쉬러 도량을 걷다

빠르게 흘러가는 하루들 속에서
천천히 걸어야 하는 길이 있음을 자주 잊곤 합니다.
해인사 도량에서 그 길을 다시 배웠습니다.
말 없는 법문과 걷는 사유의 시간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천천히, 한 자씩, 내 삶에 옮겨 쓰는 중입니다.”


해인사 도량에서 묻고 깨닫는 길

🚪 일주문 주련 — 첫 물음의 시작

歷千劫而不古 역천겁이불고
亘萬歲而長今 긍만세이장금

억천겁의 세월이 흘러도 옛것이 아니요,
만년의 시간이 지나도 지금 이 자리에 있구나.

나는 지금 이 순간이 곧 법이 머무는 시간임을 느끼며 도량에 들어선다.


🌳 천년의 숲길 — 고요로 스며드는 걸음

천년된 소나무 숲길은 고요한 숨결로 나를 맞이한다.
걸음마다 묻는다.

“내 안에 남아 있는 무거운 것들은 무엇인가.”

바람 한 자락도 경책(警策)이 되는 길.
그저 걷는 일마저 수행이 된다.


🧂 화(火)를 잠재우는 마음 — 단오 소금 의식 

천년의 숲길옆, 작은 바위 위에는 소금 단지가 놓여 있다.
단오의 절기는 양기가 가장 극성한 때라 한다.
그 강한 불의 기운을 소금과 물로 다스리는 의례가 전해 내려온다.

나는 소금 단지 앞에서 오래 선다.
그저 염원만이 아니라, **속의 불길한 기운들 — 화(怒), 탐(貪), 치(癡)**까지
소금처럼 정화되기를 바라본다.

"몸속에도, 마음속에도,
나는 얼마나 많은 불씨들을 안고 살아가는가."

작은 소금 한 줌이
그 불씨를 잠재우는 시작이 될 수 있다면.

그 마음으로 손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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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사단과 소원나무 — 인연과 염원의 자리

국사당은 가야산 산신 正見母主(=깨달음의 어머니)를 모시는 곳.
산을 품은 절이라면 그 산의 숨결을 잇는 곳이 있기 마련이다.
그 앞, 소원나무에 매달린 수많은 노란 끈이 조용히 흔들린다.

나는 한동안 그 끈들을 바라본다.

"무엇을 이루기 위함인가.
무엇을 놓아주기 위함인가."

소원은 반드시 채워져야 하는 욕망의 성취일까.
혹은 그 마음을 내려놓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가 가벼워지는 길일까.

작은 끈 하나마다 담긴 사연들,
그 끝을 내려놓음으로써 염원은 염원을 넘는다.

나는 빈 마음으로 두 손을 모은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 해인도 — 법계를 걷는 체험

54번 꺾이는 **해인도(海印圖)**의 길.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는 되묻는다.

"돌고 도는 삶 속에서 지금 나는 어디쯤 있는가."

출발과 끝이 없는 이 길이 바로 삶과 닮았다.

가장 안쪽에 이르러 다시 밖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 모든 길이 다르면서도 결국 하나임을 알게 된다.


🛕 법의 네 얼굴 — 대적광전·법보단·금강계단·대방광전

해인사의 큰 법당을 둘러싼 네 개의 편액:

  • 대적광전 — 비로자나불 법신의 자리
  • 법보단 — 팔만대장경을 품은 법보사찰
  • 금강계단 — 계율의 굳은 서원을 담는 공간
  • 대방광전 — 광대한 법계의 울림

“내가 지키고자 하는 마음의 서원은 무엇인가.”

그저 지키는 것만이 아니라,
그 서원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 대적광전 — 빛과 공(空)의 법문

대적광전 앞, 비로자나불 삼존을 마주한다.

"가장 빛나는 것은 가장 비어 있기에 가능하다."

나는 내 안의 허망한 것들을 비워내려 한다.

빛은 비운 마음에 깃드는 법.
법신불의 자리에 오래 머문다.


 

📜 장경판전 — 법보의 집, 숨은 지혜의 시간

장경판전(수다라장·법보전)은 기능만으로 완성된 공간이다.
팔만대장경을 오늘까지 지켜낸 그 숨은 노력과 지혜에 나는 고개 숙인다.

圓覺道場何處 원각도량하처
現今生死卽是 현금생사즉시

지금, 이 생사의 순간이 곧 원각도량임을 알게 된다.

말 없는 나무판 하나에도 천 년의 숨결이 머무는데,
나는 얼마나 덧없고 가벼운 말을 쌓으며 살아왔던가.
한 글자마다 다시 나를 다듬는다.


 

📚 학사대 — 전나무가 사라진 자리에서

학사대에는 한때 천연기념물이었던 전나무가 있었다.
지금은 동상만 남았다.

나는 묻는다.

"무엇이 형상을 넘어 오래 남는가."

그 자리에 남은 질문이
나를 오래 머물게 한다.

형상은 사라졌지만,
마음의 울림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킨다.


🏯 홍제암 — 사명대사의 마지막 고요

홍제암은 말이 필요 없는 곳이다.
전란의 한복판에서 칼을 들었던 사명대사가
마지막으로 염주를 쥐고 고요히 머문 곳.

툇마루 너머, 작은 마당을 오래 바라본다.
그때 사명대사가 차 한 잔을 들었을까,
아니면 바람 소리만을 들었을까.

"끝내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인생에서 무엇인가."

수행은 그 끝자락에서야 비로소 진짜 물음을 남긴다.
그리고 그 물음이야말로 남은 생을 이끄는 빛이 된다.

나는 그 자리에 오래 머문다.
아무것도 적지 않고,
그저 비워낸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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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대화상의 결어

해인사의 길을 걸으며
나는 내 안에 무겁게 쌓여 있던 마음의 먼지들을 하나하나 털어냈다.

일주문에서 시간의 지혜를,
숲길에서 비움의 깊이를,
장경판전에서 말 없는 법문의 무게를,
소금 의식에서 내면의 불길을 다스리는 작은 연습을,
홍제암에서 삶의 마지막 걸음이 남기는 고요를 배웠다.

삶은 자주 화를 내게 하고,
욕망을 부추기고,
속도를 재촉한다.

그러나 길은 말없이 가르친다.

"천천히 걷는 자에게
진짜 고요가 찾아온다."

나는 걷는다.
조금 더 가벼워진 마음으로,
조금 더 고요한 걸음으로.


🌿 에필로그

고요는 걷는 자에게 온다.
말 없는 법문은 결국 내 안의 침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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