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골굴사 - 돌에 새긴 미소, 마음에 새긴 고요 :: 포포포님의 블로그

경주 골굴사 - 돌에 새긴 미소, 마음에 새긴 고요
마애여래좌상

 

“말은 없으셨지만, 바위 위 부처님이 제 마음을 먼저 아시더군요.”
골굴사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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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에 새긴 미소, 마음에 새긴 고요 – 골굴사 이야기

바위 아래 앉은 부처, 그 앞에 선 나

경주 동해 바닷길을 따라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산과 산이 겹쳐지는 틈 사이,
마치 오랜 시간 동안 말을 아껴온 듯한 사찰 하나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골굴사.

이름부터 낯설고 조금은 날카롭게 들리지만,
막상 도착해 보면 그 분위기는 전혀 다릅니다.

여기엔 요란한 종소리도, 화려한 전각도 없습니다.
그 대신,
자연 그대로의 절벽과 조용한 바람,
그리고 그 위에 새겨진 마애여래좌상.
말이 필요 없는 고요함이 이곳의 주인입니다.


⛰️ 말없이 웃는 부처 앞에서

바위 절벽에 새겨진 부처는
천 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어떤 날은 비바람을 맞고,
어떤 날은 거센 햇살을 견디면서도
그 표정 하나 흐트러짐이 없습니다.

그 앞에 서면, 이상하게 마음이 조용해집니다.
말없이 바라보는 존재의 힘이란 이런 걸까요?

“나는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흔들리는데,
저 부처는 어떻게 천 년을 웃고 있었을까?”

문득,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동아보살

🐾 길 위에서 마주한 동아보살 – 걷는 자비의 발걸음

산문을 걸어 오르다 보면
너른 공터 한자락에 자리한 작은 돌조각상을 만나게 됩니다.
하얗고 단정한 개 한 마리.
이름은 동아보살.

1990년 겨울, 설적운 스님이 기림사에서 골굴사로 옮겨올 때
따라온 강아지 하나.
하지만 그녀는 단순한 반려동물이 아니었습니다.

동아는 새벽 예불에서 저녁까지 스님과 함께 도량을 돌며,
수행자와 참배객을 조용히 이끌었습니다.
부처님오신날에는 연등이 걸린 길을 안내하며
사람들을 법당 앞으로 인도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돌아가신 후에는 49일 불교의식을 올렸고,
지금은 보살의 이름으로 조각되어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 앞에 서자,
나는 더 이상 말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자비는 말이 아닌 태도이고,
깨달음은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걸
이 조용한 존재가 일러주었다.”

그 순간, 나는
동아보살의 발걸음이 이 도량 곳곳에 남아 있음을 느꼈습니다.
걷는 나를 조용히 이끄는
한 걸음의 따뜻함,
그것이 바로 이 도량의 불경이었습니다.


선무도 동작

🧘 선무도 – 몸으로 마음을 닦는 수행

골굴사는 단지 보는 절이 아닙니다.
이곳은 ‘선무도(禪武道)’,
몸을 움직이며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으로 유명한 사찰입니다.

복잡한 생각을 억지로 지우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호흡에 집중하고
동작 하나하나에 의식을 실어 나가다 보면
마음이 조용히 고요 속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수행자들의 절제된 움직임 속에서 오히려
진짜 자유가 느껴졌습니다.
절제 속의 자유, 그것이 아마도
선이 추구하는 **무심(無心)**의 경지일지도 모릅니다.


🌿 굴 속 명상 – 나와 마주하는 시간

‘골굴사’라는 이름처럼,
이곳엔 실제로 작은 굴이 있습니다.
그 어두운 동굴 안,
단출한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으면
모든 감각이 자연스럽게 가라앉습니다.

“지금 여기,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사라진다면
무엇이 남을까?”

정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질문을 던지는 순간,
마음은 한결 가벼워집니다.
굴 속의 어둠은 두려움이 아니라,
내 마음을 비춰보는 거울
이었습니다.


💠 포대화상의 결어(結語)

“말없이 웃는 부처 앞에서,
나는 말없이 나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걷는 동아보살 앞에서,
나는 조용히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골굴사는 내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다만,
비워진 공간 속에서 내가 나를 보는 법
조용히 일러주었을 뿐입니다.

걸음을 멈추고,
한숨 돌리고,
스스로의 무게를 가만히 느끼고 싶을 때,
나는 다시 이 도량을 걷게 될 것입니다.

허허~
삶이란, 결국
내려놓기 위해 짊어지는 여정일지도 모르지요.


골굴사 대웅전

🧳 마무리하며 – 골굴사는 어떤 곳인가요?

골굴사는 단지 ‘구경거리’가 있는 절이 아닙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조용히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돌에 새겨진 부처,
그 앞에서 멈춘 한 걸음,
굴 속에서의 침묵,
동아보살이 남긴 발자국,
몸을 움직이며 다듬는 내면,
그리고 따뜻한 차 한 잔의 시간까지.

이 모든 것이 모여
‘내가 나를 마주하는’ 하루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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