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청계산의 끝자락.
도로옆 비포장 길이 조용히 몸을 낮추는 그 길 끝에
붉은 벽돌집 하나가 숨어 있다.
간판에는 선명한 붉은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다.
‘山峨來’ — 산아래.
‘산 아래’라는 익숙한 표현이지만,
이곳에서의 '산아래'는 다른 깊이를 품고 있다.
山峨來, 그 이름에 머무르다
한자 ‘山峨來’를 곱씹어본다.
- 山: 산. 자연 그 자체, 고요와 장엄함의 상징.
- 峨: 높고 험준할 아. 위엄 있고 장대함.
- 來: 올 래. 흐름, 방문, 스스로 다가옴.
💭 ‘산이 장엄한 기세로 내려오는 자리’.
자연이 인간에게 다가와, 온기를 나누는 공간.
이 식당은 그런 철학 위에 서 있다.
음식은 단순한 조리의 결과물이 아니라,
자연이 사람에게 건네는 위로와 쉼의 형상이다.
염소탕, 몸이 먼저 알아보는 맛
이곳의 염소탕은
시끄러운 광고나 과장된 한약재 향 대신
정직한 국물과 고요한 깊이를 품고 있다.
뚝배기 속 국물은 들깨와 뼈가 오래 우러난 고소한 향.
그 위로 부드럽게 익은 염소고기가 말없이 자리한다.
누린내 없이, 겸허하게 입 안에 스며드는 맛.
말을 아끼는 듯한 국물 속에서
시간과 정성이 조용히 말 걸어온다.
치자밥, 햇살을 닮은 한 그릇
노란빛 치자밥은 단순한 곁들임이 아니다.
햇빛을 담아낸 듯한 그 온기는
이 집의 정체성을 또렷이 드러낸다.
맑은 치자 향과 잘 지어진 쌀밥의 찰기,
그리고 반찬 하나하나의 투박한 손맛은
**"우리는 화려하진 않지만, 진심을 담았다"**고 말하는 듯하다.
산의 품, 사람의 자리
식사를 마치고 식당 밖으로 나서면
멀리 청계산 능선이 저물녘 햇빛을 품고 있다.
차 한 대 겨우 지나는 길,
나무 그늘 아래 주차된 차량 몇 대,
이 모든 풍경이
'산이 사람에게 다가와 머문다'는 이름의 뜻과 꼭 닮았다.
이 집의 음식은 그래서 더 특별하다.
그것은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고요한 산이 사람 안으로 들어와
잠시 쉬어가는 장면이다.
식당 안 벽면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포장은 이런 때… 좋습니다.
혼자 먹기 미안하고, 누군가를 떠올릴 때.
감사함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
몸이 지치고 마음이 텅 빈 날.”
이 집은 음식을 빌려 사람 사이의 마음을 잇는 법을 안다.
총평 – 山峨來에서의 한 끼
국물 맛 | 들깨향과 진한 뼈국물의 조화, 무게감 있으나 깔끔 |
고기 식감 | 부드럽고 잡내 없이 잘 삶아짐 |
밥과 반찬 | 치자밥의 고소함 + 정갈한 반찬 구성 |
분위기 | 조용한 산기슭, 자연과 사람의 경계 |
철학 | 장엄한 자연이 스스로 내려와 사람을 품는 자리 |
당신에게도, 한 번쯤은 산이 내려와 주었으면
‘山峨來’.
이름 하나로 이미 다 말해버린 식당.
이곳의 염소탕은 지친 하루의 회복제이자
내 안에 흐르는 자연과 다시 마주하는 방식이었다.
도심의 속도에 익숙해진 삶이라면,
가끔은
천천히 내려오는 산의 마음을 담은 한 그릇이
우리를 다시 살아가게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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