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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 한 자루가 건네준 것 – 마음 밭의 씨앗에 대하여

 

손에 쥔 건 노란 옥수수였지만,
마음에 남은 건 그보다 더 단단하고 부드러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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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수확

친구가 직접 농사지은 옥수수를 한 자루 보내왔다.
갓 딴 옥수수 알은 탱탱하고 반질반질해서
한 알만 입에 넣어도 달큰한 흙내가 혀끝에 닿았다.

옥수수를 손에 쥐고 있자니
그 안에 담긴 것은 단순한 열매가 아니라는 걸
조용히 깨닫게 된다.
옥수수는 땅에서 났지만,
그보다 먼저 친구의 마음밭에서 싹텄을 테니까.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농사란 어떤 일보다 정직한 일이다.
심은 대로 거두고, 돌본 만큼 자란다.
가꾸지 않으면 말라버리고,
욕심을 부리면 허투루 돌아온다.

친구의 손바닥에 맺혔을 굵은 굳은살을 상상한다.
여름의 열기, 비바람, 벌레와 풀과 흙먼지 속에서
그 손은 자꾸만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굳은살은
옥수수를 감싸는 겉껍질보다 더 두텁고 단단했으리라.

옥수수를 손질하며 나는 생각한다.
삶도 그렇지 않을까.
내 마음밭에 뭘 심고 있는지,
나는 스스로 잘 알고 있는가.


삶은 결국, 마음밭의 농사

옥수수 한 자루에는
친구가 이 계절을 어떻게 살아냈는지가 담겨 있다.
땀방울, 기다림, 실패, 인내…
그 모든 시간이 알알이 엮여
노란 빛깔로 내 손에 쥐어진 것이다.

문득 내 삶의 밭을 떠올려 본다.
나는 뭘 심고 있나?
괜한 욕심만 심어놓고는
마치 곧장 풍성한 열매가 맺힐 거라 기대하진 않았나?

마음밭의 농사는
누가 대신해줄 수도,
비가 온다고 단숨에 자라지도 않는다.
그저 꾸준히 뿌리고, 가만히 기다리고,
때로는 잘라내고, 묵묵히 바라봐야 한다.


관계도 농사와 같다

옥수수를 보내온 친구와 나의 관계도
생각해 보면 농사와 닮아 있다.

씨앗 하나만으로는 자랄 수 없다.
흙과 바람과 비와 햇볕이 있어야 하고,
그 모든 것을 돌보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사람 사이도 그렇다.
친구라는 씨앗은
서로의 손길로 돌보고, 다투고, 다시 웃고,
그렇게 키워낸다.

오랜만에 안부 한 마디 없이
옥수수 한 자루가 도착했지만,
그 안에는 긴 계절이 담겨 있었다.

‘내가 이만큼 자랐어.
너도 잘 자라고 있니?’
옥수수는 그렇게 내게 말을 걸어왔다.


먹는다는 것은 마음을 나누는 일

옥수수를 삶아 한 알 한 알 입에 넣는다.
씹을 때마다 달큰함 뒤로
땀냄새 같은 게 느껴진다.

이건 단지 먹는 게 아니다.
친구가 땅에서 일군 한 계절을,
그 마음을 함께 삼키는 일이다.

마음으로 농사지은 것들은
꼭 먹는 것뿐만이 아니다.
따뜻한 위로 한 마디,
작은 손 편지 한 장,
때론 미안하다고 쓴 카톡 한 줄도
누군가에겐 큰 옥수수 한 자루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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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마치며 – 나의 마음밭에 무엇을 심을까

옥수수를 다 먹고 나서야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밭은 어떤 열매를 맺을까.’
조급하게 심고 거두는 마음으로는
달지 않을 것이다.

친구가 흙먼지 뒤집어쓰며
한 알 한 알 키웠듯이,
나도 내 마음밭을 그렇게 돌보아야 한다.

옥수수는 흙냄새가 난다.
사람 마음도 흙냄새가 날 수 있다면,
그건 아마 땀과 기다림이 스며들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오늘도 나는 조용히 다짐한다.
내 마음밭에도 옥수수를 심듯
작은 진심 하나씩 심어가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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