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인관계에서 조심해야 할 말들)
세상의 많은 사람들 중,
누군가는 혼자 있는 시간이 더 좋다고 말한다.
타인의 시선보다는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소란보다 고요를,
속도보다 방향을 중시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을 만나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혹시, 저 사람 갑자일주 아닐까?"
겨울 물 위에 선 나무
갑자일주는 甲木, 큰 나무와
子水, 차가운 겨울 물이 만나는 날이다.
그 조합은 마치 겨울 벌판에 홀로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를 닮았다.
외롭다 느낄 수도 있지만,
그 나무는 기세나 화려함보다는 단단함으로 자신을 지켜낸다.
갑자일주는 속으로는 부드럽지만, 바깥엔 단호함이 서린 사람이다.
가볍게 들뜨지 않고, 무게 잡히지 않은 말과 행동은 신뢰하지 않는다.
갑자일주는 ‘자기 설계자’다
그들은 대개 자기 기준이 분명하다.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무엇을 지키고 싶고,
어디까지가 허용 가능한지도
스스로 정해두고 산다.
그래서 대인관계에서도
그 기준이 가볍게 무너지는 걸 가장 싫어한다.
갑자일주가 불편해하는 말들
그렇다면,
갑자일주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어떤 말들에 내면이 경직될까?
예컨대 이런 말들이다.
- “그렇게 살면 손해예요.”
- “요즘은 유연하게 안 살면 안 돼요.”
- “이 정도는 좀 참아야죠.”
- “에이, 그건 그냥 넘겨요.”
- “뭘 그렇게 깊게 생각해요?”
-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이 말들 속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자기 기준을 내려놔라’, 혹은 **‘지금 이 감각은 불필요하다’**는 암시를 담고 있다.
하지만 갑자일주에게
자기 기준은 존재의 뿌리고,
그 감각은 삶을 깎아 만든 윤리다.
그걸 가볍게 다루면
그들은 웃지도, 분노하지도 않고
그냥 조용히 마음의 문을 닫는다.
혼자 있는 시간은 결핍이 아니다
갑자일주는 혼자 있는 순간을 자양분 삼는 사람이다.
혼자 있어야 생각이 깊어지고,
그 생각으로 내일을 설계할 수 있다.
그러니 그들에게
"왜 이렇게 혼자 있으려고 해요?",
"좀 더 사람들과 어울려요."
라는 말은 실은 자신의 삶 방식 자체를 흔드는 말일 수 있다.
그들은 외로워서 혼자 있는 게 아니다.
필요해서 혼자인 것이다.
내가 만난 갑자일주들은
삶에서 만난 갑자일주들은 대체로 이랬다.
처음엔 좀 차가운 듯 보이지만,
조금씩 가까워질수록 깊이 있고 믿음직한 사람이었다.
그들은 먼저 다가오지 않지만,
관계를 허락하면 그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응답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갑자일주처럼 산다는 건
타인의 소음보다 자기 내면의 울림에 귀 기울이며,
세상의 속도보다 자기 기준의 방향을 따르는 삶이다.
조급하지 않고, 쉽게 흔들리지 않으며,
어떤 계절이 와도 스스로를 세워내는 사람.
그게 바로 갑자일주다.
대화를 할 때 꼭 기억해줘야 할 것
갑자일주는 논리로 설득되기보단,
존중받을 때 마음을 연다.
그러니 그들과 이야기할 땐
가르치려 하거나 속도를 재촉하지 말고,
이렇게 말해보면 좋다.
- “그 기준, 참 멋지네요.”
- “고민하신 게 느껴져요. 저는 어떤 생각이 들었냐면요…”
- “천천히 가셔도 괜찮아요. 중요한 건 방향이니까요.”
이런 말들은
그들의 단단한 껍질 속 마음을 부드럽게 깨우는 언어가 되어준다.
마무리
갑자일주는 늘 조용히 자기 뿌리를 내리는 사람이다.
고요하고, 신중하며,
언제나 자기 삶에 책임을 지려는 사람이다.
그런 갑자일주를 제대로 알아준다면,
그들은 오래도록 곁에 남아줄 것이다.
한 그루 나무처럼.
늘 그 자리에.
묵묵히, 단단하게.